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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뷰/책장

인생의 실패자에게 자살 성공만큼은 보장하는 가게

by 心조교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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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명이 자살시도를 하는 가운데
무려 138천명이 실패를 한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휠체어 신세를 진다든지 평생을 불구로 살게 된다.”

 




 

, 자살시도를 하는 15만 명 가운데 1 2천명이 자살에 성공한다.


사실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매우 심각하고 무겁다. 특히 최근 크리스마스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20대가 있는가 하면, 수능시험을 망쳤다는 이유로 자살을 택한 10대 소녀, 생활고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40대 가장의 이야기가 뉴스로 흘러나왔다. 2007년 한국을 기준으로 고의적 자해(자살)로 인한 사망은 12,174명으로 사망원인 중 4위를 차지한다. 특히 10대와 40대에서는 사망원인의 2, 그리고 20-30대에서는 1위를 차지(통계청, 2007)할 정도로 그 심각성은 사고나 질병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살은 성공한 케이스만 계산되었을 뿐, ‘자살실패한 케이스를 따진다면 자살시도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살시도실패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휠체어 혹은 불구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자살 실패자들을 위해 자살에 성공할 수 있는 자살도구를 판매하는 자살가게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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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튈레| 성귀수| 열림원| 2007.10.29 |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의 표지를 살펴보자. 약간 어두운 느낌의 삽화가 눈길을 끈다.

목을 맬 수 있는 올가미를 왼손에 들고 있는 굳은 표정의 미시마, 여성스러운 죽음을 원하는 사람에게 맛//촉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일을 권하는 뤼크레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손톱을 잘근씹고 있는 바싹 마른 뱅상과 생일 선물로 받은 관모양의 케익을 들고 있는 마릴린, 그리고 자신의 이름의 유래가 된 청산칼리가 묻은 사과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알랑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옆 가게 진열대에는 각종 자살도구들이 놓여있다.

 

자살가게는 실패자가 되지 않도록 각종 자살도구를 판매하는 아버지 미시마, 어머니 뤼크레스,  한시라도 붕대를 감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거라고 믿는 가엾은 식욕 부진증 환자 첫째 뱅상(반 고흐, Vincent), 자신이 쓸모없고 못생겼다고 투덜거리는 마릴린(마릴린 몬로), 섹스를 통해 감염되어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 팔 구멍 난 콘돔을 시험해보다가 태어난 막내 알랑(앨런 튜링, Alan)의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선조부터 대를 이어온 가업이 돌연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발을 가진 막내이자 항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알랑으로 인해 가족들이 변해가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이 책에서는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이를 희화화하여 내용은 살짝 그로테스크하지만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세푸쿠(할복자살)를 위한 완벽한 자살방법, 삶을 끝장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자살 테마파크, 피 속에 깃든 독액 때문에 키스 받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키스, 자살 도구를 살 돈이 없어 포장 봉투를 받아다가 봉지 끈으로 자신의 목을 졸라 자살가게 앞에서 자살을 택한 남자에 이르기까지 주제는 분명 무겁지만 그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이다.

 

팀버튼 감독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영화말고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안내서(영화말고 책)"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일부를 아래에 발췌했다.

 

"자살자" ", 살자!"하는 사람이다(자살자에 대한 생각)

 

근데 넌 왜 죽으려고 하니?

인생이 별로 살만하지 못한 것 같아서…”(독이 든 사탕을 구매하려던 십대 소녀의 말)

 

아이는 똑바로 앞만 쳐다보고 있을 뿐, 무얼 딱히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얌전하게, 어떻게든 엄마가 오기 만을 고대하며 하나의 그림처럼 얌전하게 그러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모든 움직임, 말 한마디, 한숨조차도 스스로에게 금지시키고 있었다. 너무나 얌전해서 엄마가 오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코 끝이 간질거린다든지 양말이 발목까지 내려간다 해도 아이는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엄마가 올 거야, 엄마가 오고 말거야… … 아이는 자기 안에서 모든 걸 삭이고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 바로 그러한 부재의 능력, 갑자기 자기 앞 아주 먼 지점을 응시하는 듯한 처신방법을 터득해두었다. 그것은 유치원 마당 벤치에 홀로 앉아 한도 끝도 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때처럼 머릿속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만들어놓는 일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돌이 되어 가고, 살아있는 자기 몸뚱어리를 더는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숨도 쉬지 않는 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무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이미 딸은 살아있지 않은 무언가로 거기 앉아 있는 것이다.”(뤼크레스의 어린시절)

 

특히 이 마지막에 발췌한 부분은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내 생에서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낀 구멍의 정체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참고자료: 2007 사망 및 사망원인통계결과, 통계청(www.nso.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