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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뷰/책장

"읽어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것처럼"

by 心조교 2009. 3. 31.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못한 것처럼"(류시화 엮음)


누구든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알프레드 디 수자의 유명한 시의 제목을 딴 류시화 시 엮음집.
이 책을 접한 후 내 첫느낌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읽어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류시화 역 | 오래된미래| 2005.03.30



..이 책이 너무 유명해진 탓에 이곳 저곳에서 인용한 경우를 많이 봐서인지 
구절구절을 냠냠 씹어먹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주는 구절들이 많았다.



우선 책 표지에 둘러진 띠를 살펴보자.

앞. 네티즌이 뽑은 선물하고 싶은 책 1위.
     60만 독자에게 위안을 준 사랑과 감동의 스테디 셀러.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서기관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에 이르기까지 41세기에 걸친
     유명, 무명 시인들이 들려주는 감동의 치유시 모음집.

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라, 한번도 넘어지지 않은 것처럼

     한 편의 좋은 시가 보태지면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시는 추위를 녹이는 불, 길 잃은 자를 안내하는 밧줄,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다.


책의 표지나 책 자체의 구석구석에 상업적인 광고나 정보를 담게 되면, 책의 가치가 왠지 저렴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용하게 되는 것이 책의 '띠'로,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여러가지 양념들이 버무려져 한 권 한 권에 둘러진다. 이 책, 이 시집 역시도 스테디셀러임을 강조하면서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걸 강조한다. 스테디셀러라. 얼마나 팔려나갔길래? 또 어떤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일까?

'띠'만 봤을 땐, 60만 독자라고 써 있으니 대략 5-60만권쯤 팔려나간 걸까 싶고. 사랑의 아픔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내 생각엔 거의) 없을테니 누구에게든 무난하게 선물하기 좋은 책 인듯 싶다. 즉, "딴 사람 다 읽었는데 너만 안 읽은 거다. 안 읽어봤으면 어서 읽어봐"혹은 "선물은 해야겠는데 취향을 몰라 뭘 줄지 망설여질 땐, 왠만하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법한 책이 어떻겠니?"라는 느낌.

정말로 그런걸까 싶어 책 뒷면의 정보를 보니 2005년 3월에 1쇄가 발행된 이후, 2008년 10월에 나온 것이 232쇄. 3년이 좀 넘은 기간동안 상당히 많이 팔려나갔구나 싶다.


약간 센치한 느낌에 젖어들 오후의 나른한 시간대의 라디오를 듣고 있노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사랑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 시의 대목. 이 시집이 유명해진 이유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내 어린 시절 처음으로 선물받은 류시화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의 제목이 그랬듯이 류시화의 이름을 달고 나온 시집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을 끌었다.

하지만 류시화 지음, 이 아닌 류시화 엮음, 이란 책 표지에서 한번 움찔했고 책 맨 뒤면에 저자와 출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시에 대해 '게제 허락을 받지 못했다'며 '연락을 주시면 다시 허락을 받고 게제료를 지불하겠습니다'를 보며 뒷골에 서늘한 기운이 지나간 건 나만 그랬던 걸까.


이것은 좋은 시와 구절들을 보기좋게 묶어 포장한 뒤에 예쁘게 내놓은 책.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시가 마음에 들 필요는 없다. 다만 그중에서 뭔가 당신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책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니까. 나 역시 이 곳에서 '사막', '또 다른 충고들'의 구절이 와 닿았다. 읽는 사람에 따라 시에 따라 받는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니 하나하나의 구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좋은 시와 구절들을 보기좋게 묶어 포장한 뒤에 예쁘게 내놓은 책..........
아. 읽고 난 뒤 남은.. 왠지 모를 실망감.

개인 책장에 이 책을 꼽아놓으며 한 줄 메모를 달 수 있다면 이런 메모를 붙이고 싶다.

"상업성으로 똘똘 뭉쳐진 시집.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가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