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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뷰/책장

시간 여행자의 아내 이해하기

by 心조교 2009. 10. 29.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48시간, 혹은 그 이상의 무한대의 시간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시간을 여행하게 되는 시간 여행자라면, 그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는 '시간을 여행하는 자'에게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 예로는 '백투터 퓨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나비효과' 등이 있습니다.

백 투 더 퓨쳐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1985 / 미국)
출연 마이클 J.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크리스핀 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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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츠츠이 야스다카 (북스토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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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소설, 만화, 극장판으로 모두 제작되었습니다)

나비효과
감독 에릭 브레스, J. 마키에 그러버 (2004 / 미국)
출연 애쉬튼 커쳐, 멜로라 월터스, 에이미 스마트, 엘덴 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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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터퓨처>에서 주인공은 차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하며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는 죽을 뻔한 경험을 통해 드러난 타임리프 능력을 통해 시간 위를 달리게(은유적 표현입니다) 되고, <나비효과>의 에반은 우연히 보게 된 낡은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 헨리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그 이후로는 시시때때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수칙은 하나입니다. "과거에 관여하지 말 것."  불행한 과거를 바꾸려던 마코토(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에반(나비효과)은 뒤바뀐 과거의 사실 때문에 현재가 바뀌어버려 큰 위기에 처하지요. 물론 뒤바뀐 과거로 인해 변화된 현재 관계의 진행형은 현재의 그들을 위기에 처하게도 합니다. 말 그대로, 작은 변화로 인해 현재가 뒤바뀌어버리는 일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시간여행을 다룬 이러한 여러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궁금증을 품게 됩니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의 주변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시도때도 없이 시간을 여행하는 그들의 친구, 가족, 동료들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어쩌면 자신과 소소한 다툼을 하고 난 뒤에 그 불만감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바꾸고 올지도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하는 걸까? 어쩌면 시간여행자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시간을 여행하는 자'가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시간 단서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정말 무수한 여러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오드니 니페네거 지음 / 변용란 엮음 / 출판사 살림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헨리)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클레어)의 만남과 성장, 그리고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소설은 <안네의 일기>처럼 헨리와 클레어의 관점에서 일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시간 여행을 하는 자 답게 날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뒤죽박죽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은 개연성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선이 되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사실 소설을 읽다보면 의아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자도 신경을 썼는지 책2권의 말미에 보면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물론 소설은 허구의 픽션이며 이 소설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 그런 점들은 소설의 진행을 위한 조미료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윤리적 혹은 심리학적으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헨리와 클레어의 첫 만남은, 헨리의 입장에서는 클레어와 이미 결혼을 하고 살아가던 시점이며, 클레어의 입장에서는 8살 어린 꼬마인 어린시절이죠. 40대의 남성이 아직 10대도 아닌 어린 꼬마가 자신의 아내인 것을 알아보고 '자신에 맞도록 키웠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이 약간 꺼림찍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속된 유산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클레어와의 관계에서 헨리는 클레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한 채 정관수술을 받게 되는데, 과거의 헨리가 현재로 오던 시점에서 클레어와의 우연한 섹스를 통해 그들은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과거의 헨리와 현재의 헨리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때도 그들은 같은 인물일까요? 사랑하는 아내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인가요?

이런 부분에서 헨리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어렸을 적부터 헨리는 미래에서 온 헨리에게서 삶기 위한 기술(자물쇠 따기, 소매치기 등)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만난다는 것은 헨리에게 있어 상당히 친숙하고 가까운 친구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앞으로 될 자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한 위안이 될 수도 있었겠죠. 이런 면에서 현재의 헨리는 과거와 미래에서 온 자신을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동정하고 도와주어야 할, 자신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헨리에게 미래의 헨리는 마치 자신의 결정된 인생을 알고 있는 절대자로 여겨질 소지도 있습니다. 즉, 현재에 어떻게 행동하든 미래의 자신의 모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장치가 되죠. 현재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지만(예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것이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그 날, 나는 죽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비극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에 입각하여 이 소설을 곁눈질로 바라볼 것만은 아닙니다. 작가는 소설 중간중간에 헨리와 클레어의 대화를 통해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따라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 하는 노력 그 자체가 이미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우리의 미래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끼워넣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메세지와는 다르게 소설 속의 헨리는 자신의 선택에 있어 미래에 보고 온 것을 바탕으로 과거에 반영합니다. 클레어와 살 집을 고를 때도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미래에서 둘이 사는 곳으로 이미 보고 온 집을 고르지요. 즉, 작가가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주인공의 행동은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는 형태를 띄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작가가 정말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뭐였을까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어제(10.28) 영화로도 개봉되어 상영관에 올랐습니다. 대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많은 호평을 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영화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네요. 영화를 보고 인물들의 감정이나 일련의 사건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싶으신 분이 있다면 소설을 차분히 읽으시는 걸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때로는 영상물의 배치보다는 여러 묘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글이 좀 더 명확하게 흐름을 짚는데 도움이 된답니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몇몇 사건들 이외에 보다 상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혹 책을 읽기 위해 손에 들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나른한 햇빛을 즐기는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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