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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뷰/책장

상처입은 마음에 붕대감기

by 心조교 2009. 10. 16.
아무리 사소하고 작아보이는 상처라도 그 나름의 아픔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손가락에 박힌 가시 하나가 아무리 작고 소소해보여도 가시가 꽂힌 손가락의 신경으로부터 욱식욱신하고 따끔한 느낌은 계속해서 흘러들어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은 상처 하나하나를 얼마만큼 인정해주고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다 겪는다는 그 흔한 사랑 고백과 이별 하나에도 상처는 존재합니다. 배려하는 표정, 짧은 위로 한 마디, 토닥거리는 손짓 하나로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음에도 우리는 상처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원래 다 그런거라더라." "왜 자기만 그런 것마냥 유난이라니" "그까짓 거 신경쓰지 말고 그냥 잊어버려" 주변인들의 이런 말들은 오히려 상처 자리에 두꺼운 모래를 끼얹고 상처가 있었던 자리마저 덮어버리기 마련이지요.

왜 사람들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요즘 세상에서 멋지다고 말하는, 소위 '쿨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그런 상처일랑은 드러내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게 멋의 기준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그런 상처를 드러내는 자신이 약하게 보일까봐 강한 척 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걸까요?



"그래,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고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은 어떤가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꼭 겉으로 표현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말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요?

상처받은 마음에 붕대를 감아준다면, 상처받은 기억에 붕대를 감아준다면,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과 기억은 언젠간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텐도 아라타 / 2007/ 문학동네


'상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랄하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이 소설은 생기있고 경쾌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는 않습니다. 세계 평화를 꿈꾸는 열혈 소년 디노와 외강내유 여고생 와라, 발랄한 로맨티스트 시오, 시니컬한 모범생 템포, 소심한 순수소년 기모, 다혈질 펑크소녀 리스키 등 고등학생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죠.

절친한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긴 일, 의사에게 성격이 병들었다는 말을 들은 일, 흉악범과 이름이 똑같다고 실연당한 일, 초등학교의 은사님이 오리털 이불을 강매하고 간 일, 부모와 안 닮았다며 의심받은 일, 부모와 붕어빵이라고 놀림당한 일, 사귀던 친구가 양다리 걸친 일 등, 왜 상처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의 갖가지 사연에도, 분명 당사자 밖에 느낄 수 없는 아픔이 있다고 보고 붕대를 감아준 그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더군요.


붕대클럽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소개합니다.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건 상처야'라고 인정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이야. 상처 받으면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 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간 분명히 낫는 거잖아."


"세계이 어느 한 곳의 누군가는 알아준다. 나의 아픔, 나의 상처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만큼의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손에도 발에도 몸통에도 감아 얼굴만 나온 모습으로 만들었다.
'넌 이만큼 큰 상처를 받았던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붕대감기.
플리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붕대감기는 좋지만 숨 쉴 구멍은 만들어줘야겠죠?! :)
Face of an Angel!?!
Face of an Angel!?! by Arnett Gil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