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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엿보기/재택근무 연구

[발췌] Publish or Perish...

by 心조교 2008. 9. 26.

'안병기박사 미국유학이야기' 중 일부 www.hibrain.net에서 펀글


교수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 중에 '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다. 논문을 출판하든지 아니면 도태되든지 하라는 이 문구는 대학가에서 연구실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논문 출간은 교수들에게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들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유명 저널에 한두 편의 논문을 싣지 못하면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떳떳하지 못하고, 혹시 교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논문의 숫자는 그 사람의 미래와 직결된다. 물론 미국에서는 'SCI 저널'과 같은 외형적인 기준이 없다. 언젠가 국내 신문에서 대학가의 SCI 저널 논문 게재 숫자에 관한 통계를 보고, 교직에만 30년을 계신 분께 SCI라는 걸 아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대답은 "I've never heard about it." 물론 그분이 출간한 논문은 대부분 SCI에 속해있는 저널 중에서도 top에 속한 것이었고, 그분 자신이 International Journal of Fatigue라고 하는 재료의 피로파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의 editor-in-chief 였다.

논문 출간에 관한 한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양이야 질이냐'의 문제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를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좋은 논문을 많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과 쪽의 정치학이나 경제학 분야이거나, 같은 이과라도 연구 분야가 실험이 아니라 순수 이론 쪽이라면, 박사과정 내내 공부한 내용으로 좋은 논문 한편을 내기 힘들 수도 있다.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Science 나 Nature, 혹은 Cell 과 같은 저널에 논문 한편 싣는 것이 '가문의 영광' 일 테고, 이들은 비록 SCI에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준이 높지 않은 저널에 10편을 싣는 것보다 이런 유명 저널에 한편 싣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유학생들의 경우 국내 대학의 교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10편의 논문이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 문제는 정답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보장된 미래'의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택은 물론 각자에게 달려있다.

어쨌거나 논문을 쓰는 일은 'pain in the neck'이다. 내가 첫 번째로 소위 유명 저널에 논문을 낸 때는 1997년이었다. 약 1년 간 일한 분량을 정리해서 96년에 제출을 하고 출간되기까지 약 1년의 시간이 걸렸으니까, 연구를 시작해서 논문이 나오기까지 2년 정도가 걸린 셈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싣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쳐가면서 무려 30페이지에 달하는 초고를 완성하여 지도교수님께 가져다 드렸는데, 한 3일 후에 전화가 왔다.

교수: Hi, B.K. Would you do me a favor?
나: Sure. What can I do for you?
교수: Could you copy your paper on a floppy disk and bring it to me?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교수님은 3일 동안 내 영어와 전체적인 구성을 고쳐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쓰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원고를 복사한 디스켓을 가져다 드린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교수: Hi, B. K. I'm done with the revision. You can get your paper back and polish it.
나: Sure. Thank you, Bill.

디스켓을 가져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한달 이상 밤새가며 쓴 원고를 단 이틀만에 완전히 교정을 보았다는데 우선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원고를 아직도 'our paper'가 아닌 'your paper'로 불러주는데 눈물나게 고마웠다. 가져와서 파일을 열어보니 전반적인 내용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구성이나 어휘선택, 부연설명, 참고문헌 등의 면에서 '급진전'을 보여 전혀 다른 논문이 되어있었다. 논문을 읽어가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상당히 훌륭한 연구를 했나보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종합영어를 공부하며 배웠지만 단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Suffice it to say that'이라는 격조 있는 문구가 과학논문에 적절하게 사용된 실례를 '목격'했다. 또한, 실력 있는 교수님과 일하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별것 아닌 연구 결과라도 별것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그러나, 반면에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중 하나는 실력 있는 교수는 논문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기 때문에 유사한 결과를 약간 수정해서 두세 편씩 논문을 쓰는 '자존심에 반하는 행동'을 꺼리고, 이는 '다작'이 절실한 학생들에게는 불리하다는 것. 또 하나는 교수님과 같이 있을 때는 질 좋은 논문이 나오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나면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내 지도 교수님과 몇 편의 논문을 낸 이후 졸업 후에 다른 분들과 일하면서 논문작성을 주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도교수님의 영어가 워낙 출중했던지라 그 이후로늬 컸던지, 내 자신이 박사과정에 들어간 이후 가장 큰 목표는 '논문 500편 정독'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내 지도교수님께 잘 보일 욕심으로 논문을 한 30편쯤 복사해서 들고 간 적이 있었다.

교수: What are they?
나: These are technical papers I will be reading this month.
교수: Let me take a look.
(잠시 훑어본 후 몇 개를 골라주며)
You don't have to read them all.
Just read these papers by Evans, Hutchinson and others.
나: Why? My goal is to read 500 paper?

연구 시작 전에 효과적으로 논문을 읽는 요령은 아래와 같다.
(1) 최근 1~2년 내에 출간된 논문 중에서 그 분야의 대가가 쓴 논문을 골라 읽으며 경향을 파악한다. Review paper라면 더욱 좋다.
(2) 그중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의 해당 논문을 참고문헌(references)에서 찾아 읽는다.
(3) 그 참고 문헌의 참고 문헌 중 관심 있는 논문을 찾아 읽는다.
(4) 논문은 abstract, introduction과 conclusion을 먼저 읽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본론으로 넘어간다.

내가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쓴 학위논문에는 98편의 참고문헌이 수록되어있다. 그 논문은 물론 모두 읽어보았고, 수록하지 않은 논문 중에서도 연구를 위해 읽었던 논문은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 논문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이었던 논문의 수는 한 20여편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내 지도교수님의 논문 한편은 워낙 중요하면서도 어려웠던 까닭에 약 20회 이상을 줄을 치며 정독해서 너덜너덜해질 정도가 되었다 중요 논문을 제외한 다른 논문들은 크게는 연구경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내 결과를 비교 분석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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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