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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뷰/눈으로 즐기기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명성을 깍아내린 상조회사 광고

by 心조교 2010. 1. 6.

* 공 연  명 : 그대를 사랑합니다
* 관람날짜 : 2010. 01.05 (화) p.m. 3:00
* 주연배우 : 강태기(김만석), 연운경(송이뿐), 이희연(장군봉), 이현순(조순이), 민충석(멀티남), 신현빈(멀티녀)
* 별점(다섯개 만점) : ★★★★



강풀님의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각색한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 오랜만에 좋은 연극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초대이벤트에 선정되어 기쁜 마음을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2시간동안 눈길을 헤치며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이 극은 상당히 좋은 내용이며 원작을 보고 감명을 받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분명 어머니 마음에도 드실거라고.

'첫 인상'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극을 보기 전 특정 상조회사의 광고가 정확히 24분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360만원에 해당되는 상조 서비스의 회원가입신청서를 받았습니다. 상업과 문화가 결합한다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문화를 발전시키고 보급을 확대시키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겠지요. 마치 영화를 보기 전에 광고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자금(이것은 제작사? or 상영관? or 배급사? 누구의 이득일까요?)을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의 경우에는 표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었고 특정 상조회의 광고를 실은 프로그램 북과 볼펜이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회원가입신청서를 작성한 어르신들께는 영화표 2매가 제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초대이벤트로 오셨을 어르신들 이외에도 오늘의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은 대부분 40대-50대의 연령층으로 보였으며, 극이 시작되기 전의 분위기는 마치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즐거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한 후에 약을 파는 다단계 판매의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극 자체의 만족도를 떠나 불쾌함을 주었습니다. 이로 인한 불쾌함의 첫인상 효과는 극을 보면서도 이어져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따라서 이후 비슷한 초대이벤트 혹은 극 진행을 보러 가실 분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미리 마음 대비를 하시고 관람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제 경우에는 초대이벤트를 주관한 카페의 운영진들의 빠른 알림으로 극을 보기 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갔기 때문에 마음대비를 한 케이스였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을 보면 모르고 간 분들의 경우 좀 더 실망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 자체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의 불만족으로 인한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극 자체는 연기력이 높은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만족스러웠습니다. 말투는 거칠고 언뜻 무뚝뚝해보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김만석씨, 죽은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이름없이 고생하며 살아왔던 송씨, 치매걸린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장군봉씨,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아픈 사랑을 했을 조순이씨. 그리고 멀티맨과 멀티녀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낸 두 분. 

장애인의 사랑과 더불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노년의 사랑을 다루면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으로 제 주변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어르신들의 '관계'와 제 미래의 모습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정지된 웹툰에서 움직이는 극으로의 전환을 통해 귀에 착착 달라붙는 김만석씨의 욕설섞인 말투와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면서 할말은 하는 송이뿐씨의 행동과 태도를 시청각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이 극의 하나의 묘미였던 것 같습니다. 대사와 그림으로 이루어져있던 웹툰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을 통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대를 가졌던 저로선 원작에서 인상깊었던 몇몇 부분들(장군봉씨의 동반자살 후 김만석씨가 달려와 울며 테이프를 떼는 장면, 죽을 때도 장갑을 빼지 않았던 김만석씨의 회상씬과 동사무소직원들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송이뿐씨에게 알리지 말라던 손녀딸)이 연극상의 한계 혹은 각색에서의 제외로 인해 표현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더군요.


강풀님의 웹툰을 감명깊게 보신 분들께.
가벼운 개그와 최신 유행 트렌드를 부담스러워 하시는 어르신들께.
사랑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을 할 연인들과 결혼을 앞둔 혹은 이미 결혼을 한 연인들에게.
나이가 들수록 희노애락의 표현이 사그러질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